2차전지의 다양성

기술에 대한 투자 사업 언저리에서 한 2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여러 생각이 문득문득 들 때가 있다. 주로 돈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금까지 게임, 커머스 플랫폼, 핀테크, 반도체 장비, 바이오, 코인/거래소 등등에 투자해서 누가 큰 돈을 벌었다더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어 왔는데, 첨엔, “나도 할 수 있었는데…”, “그 때 그랬으면…” 하면서 속이 상하기도 했고, 특히 아는 사람이 그 당사자라면 소위 Peer pressure 도 많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센도를 시작하고 이제 6년 넘게 지내 오며 이런 저런 안팎의 일들을 겪다 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면서 마음이 쉽게 동요되지도 않고 딱히 남이 부럽지도 않다. 사업을 하면 종교인이 된다고 하더니만 정말 그런 것 같다. 철이 드는 걸까.

2023년은 나에게 참 재밌는 해였다.

부동산이 그랬고(드디어 local maximum을 지나는 것인가), 반도체가 그랬고(세상에…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만든 fabless에 이렇게 미친듯이 투자를 하다니.. 오 마이 갓), 전기차가 그랬고(그렇게 줄서 기다려서 사던 것이 이제는 재고로 쌓인다니… 특히 중고차는 심각…), 토스가 그랬다.(이것도 세상에… 흑자가 난댄다. 사실 지분 정리가 너무 일찍 ‘된’ 마당에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속이 쓰리다. 그런 꼴을 보기 싫은데도 열심히 쓰고 있는 나를 보면 잘 될만 하기도 하다.)

내 투자와 관련해서는, 2차전지쪽의 매크로가 천당지옥을 오르락내리락했던 것 같다.

지금 가지고 있는 포트폴리오 중에 배터리 관련된 회사라 해봐야 LTO 음극 2차전지를 만드는 “그리너지” 하나가 전부다.

투자 당시, 나름 밸류체인을 놓고 봤을 때, 지금 시점에 벤처투자자로서 해볼 만한 남아 있는 유일한 영역이라 생각했었고, 그에 맞는 투자를 했다고 생각한다. 투자 후 후속 투자도 이루어졌고, 현재는 설비 증설을 위해 대규모의 대출을 추진 중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시장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알다시피 23년의 주식 시장에서는 누가누가 잘하나 하면서 엔비디아와 2차전지가 불장을 만들었고, 엔비디아는 연말까지 오면서 $2T 를 넘어갔지만, 배터리는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바닥을 치기도 했다. 역시 전방 시장의 움직임이 후방에서 재료를 제공하는 회사의 전망을 좌우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본다. AI는 ChatGPT라는 말도 안되게 편리한 심사보고서 제조기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에라도 계속 발전할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된 GPU, Datacenter, 전력인프라 등이 대규모의 성장을 보였다. GPU도 cuda core가 아닌 다른 것들이 등장하면서, 특히 대량의 AI 연산 처리를 위한 에너지 사용량이 막대할 것으로 예측되는 근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는 기술들이 많은 투자의 관심을 끄는 걸 보면 앞으로도 그 열기가 식지 않을 것 같다.

Analogy: 과거 휴대폰 시장이 커지면서 중계기 시장도 커졌고, 공급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baseband 칩”이 필요하다는 것.(결국 삼성은 엑시노스를 만들었지요.) 중계기 시장의 성장으로 상장한 회사가 고부가가치 신사업으로 무엇을 원했을까? 바로 baseband 칩이었다. (이걸 보면, 당시 쏠리테크, 이후 팬텍 회장이 되신 정준 회장님의 안목은 삼성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볼 수 있는 선도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우리가 만들 수 있다면? 이런 니즈가 있었고, 딱 17년 전에 내 첫 벤처 투자가 바로 그런 fabless 회사(Amicus Wireless)였는데,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WiMax는 주류가 되지 못했고, 곧장 LTE로 시장이 넘어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표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기는 어렵고, 또 fabless 는 한국인에게 어렵다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그게 입증이 되어 안타깝기도 했었다. 지금 리벨리온을 보면 KT가 그 때의 그 중계기 회사 쏠리드 같고, 리벨리온의 GPU는 그 때의 WiMax Baseband 칩 같다. 퓨리오사는 또 다른 미친 천재들 같고. 두 회사가 나에게 소개될 당시 펀드가 없어서 투자를 못했지, 내 마음은 이미 열 번도 더 투자를 했었다. :-)

반면 배터리는, 이런 AI 시장의 전후방 성장과는 달리, 어찌보면 한 사람, 일론 머스크에 놀아난 느낌이다. 전기차 시장의 과도한 hype을 만들었고 전세계 모든 이들이 그가 이야기하는 미래를 믿고 투자를 했다. 그런데 hype은 그만큼의 valley를 만들지 않던가. 전방 시장의 그림이 너무 판타스틱하니, 관련되는 배터리 시장의 고루한 전지쟁이들조차 2030년에 될까 말까한, 해결해야 할 물리적인 장벽이 천지삐까리인 미래 기술을 당장 2-3년 뒤면 되는 것처럼 포장하게 되었고, 당장 불이 왜 나는지도 모르면서 에너지 밀도를 더 높여가는 신기술을 만들고 시장에 자랑을 했고, 여기저기 공장을 지어댔다. 그 결과 다들 집에 가시는 것 같다. 다만! show must go on이라 하지 않았나. 누가 전기차의 미래를 부정하고, 또 그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의 문제를 가벼이 볼 수 있겠는가?

포스코의 배터리 소재 사업, 에코프로와 같이 대기업이 생길 정도의 산업도 생겼고, 박순혁, 선대인을 비롯한 개미들도 벌었다. 투자 기관은 물론이다. 자, 다음은 누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나와 나의 포트폴리오 회사는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https://eiec.kdi.re.kr/policy/domesticView.do?ac=0000182174 이런 뻔한 보고서를 왜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시장은 전고체, 소재 공급망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차 전지에는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같은 기술 가속화 모델이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또 한 번 배터리 시장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때, 그 때도 미래 기술 실현을 앞당겨서 소재로 사용해 먹는다면 그 관심 또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본다.

다시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또 한번의 hype 이 찾아온다면 그 때는 자동차에는 자동차의 사용성에 맞는, 인프라에는 인프라의 사용성에 맞는, 인간을 위해서는 안전성이 최우선이 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배터리 기술이 있으며 이 각각의 기술들이 각각 인정받을 수 있으면 (시장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대중들이 이것들을 기술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그걸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시장을 탓할 수도 없다. 벤처투자자는 “미리 투자pay forward”하는 사람으로서 사업과 기술에 투자하고 지원을 하며 그 관심이 나의 것이 되기를 기도할 수 밖에. 그래서 투자를 운7기3이라 하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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