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이 시국(?) 에도 계속 투자합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전세계가 한 번도 겪지 못했던 팬데믹을 겪은 이후 그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도 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터지고 장기화되면서,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경기 침체에 대한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가는 끝없이 솟구치고, 반전을 외치며 호기롭게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공급 받기를 거부하던 서유럽 국가들은 이제 조금씩 러시아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로 선회하는 모습들을 보입니다. 전세계 밀 수출 1위 국가인 러시아와 5위 국가인 우크라이나의 밀공급이 어려움을 겪고, 미국 밀 최대 생산지인 캔자스는 가뭄으로 작황이 매우 안좋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세계 10% 이상의 비료를 공급하고 있는 러시아가 비료 수출을 제재하면서 비료 가격도 급등하여 식량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플레이션 염려로 FED는 자이언트스텝을 시작하면서, 연일 금리는 오르고 주가는 바닥 모르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가보니 2007년은 제가 처음 소프트뱅크벤처스에 입사하면서 벤처캐피탈 투자를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VC 업계에 입문한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부동산들을 한데 묶어서 복잡한 계약구조를 만드는 형태로 출시했음에도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파생상품 CDO는 곧 부실자산이 되어버리고, 이러한 부동산 및 파생상품을 담보로 막대한 레버리지를 일으켰던 채권들이 만기가 도래하면서 채무불이행 사태가 여기저기서 발생합니다. 결국 CDO는 휴짓조각이 되어 버리고, 어렵게 집을 산 서민들은 위기에 처하고, 경제 불황이 오면서 일자리는 줄고, 한때 세계 최고 엘리트 투자은행이었던 리만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벤처캐피털업을 처음 시작하여 주니어로 입사했던 저에게 이러한 상황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시장 참여자 중 어느 누구도 투자를 공격적으로 집행할 생각이 없었고, 자본 시장은 급격하게 경색되었기 때문에, 신규 투자를 하는 것은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죠. 이렇게 신규 포트폴리오 기업을 찾아서 투자하는 대신, 기존에 투자했던 포트폴리오 기업들에 더 집중하여, 자금 상황, 비즈니스 현황들을 긴장감 있게 주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부분인데요. 국내에서 이렇게 어려운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창업된 기업들이 어디일까요? 바로 카카오, 쿠팡, 야놀자, 블루홀스튜디오 (현 크래프톤), 배달의 민족 등입니다. 금융위기의 본고장 (?) 인 미국에서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어떤 기업들이 창업되었는지 아시나요? Whatsapp, Venmo, Slack, Uber, Instagram, Pinterest, Square, Cloudera 등의 기업들입니다.

역사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현재 OS 시장을 양분하고 있고, 현시점에 전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가치를 가진 두 IT 공룡인 Microsoft와 Apple이 탄생했던 1970년대는 금본위제가 폐지되면서 석유파동과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각해 지던 시기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들의 반발과 높은 실업률 등의 리스크를 감내하면서 1980년대 초에 이르러, 당시 FED Chairman 으로 유명했던 Paul Volker의 리드하에 금리를 20%대까지 인상하여 혹독한 경제 불황을 겪으며 인플레이션을 간신히 극복해낸 시기였습니다.

국내에서 15년 가까이 VC 혹은 테크 스타트업 관련 업계에서 일하며, 시장의 펀더멘털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던 회사들이 위대한 기업들이 되어가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지켜 보았던 1인으로 이 시국(?)에 투자를 유보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희, 계속 투자합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이 매일같이 한걸음씩 내딛으며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가고, 하루하루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정말 녹록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모든 창업자 분들께 다시 한 번 존경을 표하며, 저희의 경우, 포트폴리오 창업자 분들께 현금 보유 (또는 창출) 에 대한 중요성, 투자 유치시 기업 가치에 대한 기대치 낮추기, 비즈니스의 본질에 집중하기, 임직원들의 사기 및 창업자 분들 본인들의 멘탈 관리 등의 방향으로 함께 고민하고 조언을 드리곤 합니다.

근데,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모든 일에는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죠. 경제가 어려우면 다른 경쟁사들도 그만큼 어려워 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남으면, 그만큼 향유할 과실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인력들이 많이 정리되기 때문에 고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들이 더 늘어나기도 합니다. 최근에 크립토나 DeFI 쪽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 분야의 기업들에서 엔지니어 분들이 많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행운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나 다른 나라 VC들은 거시 경제 상황으로 인하여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있는데 반해 한국의 VC들은 상대적으로 투자를 줄이는 비중이 적어서 여전히 많은 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으로 공공 재원이 테크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한 목적의 VC 펀드들로 계속 공급되고 있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일텐데요.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원을 받는 상황이 조성된다는 것은, 향후 많은 분야에서 한국 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선두 주자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그 가설의 주인공이 귀사일 수도 있고요.

Previous
Previous

오리지널 IP : 시나리오부터

Next
Next

새 리그와 새 팀에 적응이 필요없는 선수 - RX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