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IP : 시나리오부터

2019년 4월 중순 LA…

우리팀은 말리부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Aaron 은 익숙치 않은 미국 서부 해안의 파도를 서핑하고 있었고, Alex와 저는 따뜻한 모래 찜질을 하며 앞으로 있을 미팅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까지는 엔터나 게임같은 콘텐츠 투자는 나의 것이 아니라 생각했고, 특히 영화투자 같은 것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라고 하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를 만들고 거의 초반에 포트폴리오에 포함했던 달콤소프트 투자를 통해, 그리고, 막 성장해 나가는 K-Pop의 저력을 몸으로 느끼면서, 그러면 안되겠구나, 선입견에서 벗어나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019년 5월에는 한 가지 이벤트가 있었는데, 저는 그 이벤트가 K-Pop의 인식이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극명하게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방탄소년단의 로즈볼스타디움공연이었습니다. (갈 수 있었는데... 아까비..)

제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고 하니, 그 전에도 K-Pop은 미국의 청소년들이 매우 좋아하는 카테고리의 콘텐츠였고 이 이벤트 이후에도 그것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4월 초에 만났던 Goode partners의 대표이면서 Supreme의 초기 투자자/대주주이기도 한 Keith Miller의 반응이 너무 극명했기 때문에 이런 호들갑스런 감상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뉴욕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대뜸 첫 인사로 “How did you find me.. huh ?”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은 처음 만났고, K-Pop에 대한 인기와 그와 관련된 사업에 대한 투자에 대해서는 뜨뜨미지근 했습니다. 그는 대화 중에 비뚤어진 그리크 블라인드와 살짝 틀어져서 놓여진 사무실 소품을 단정하게 만들어야 할 정도로 강박이 있었고, 사무실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어서 (보니까, 조던 사진도 있더만요. 투자자라고 하더이다. 허허허. 저도 찍혔었네요. ㅎㅎㅎ) 쌓아놓고 있더군요. 그런 그가 생전 처음 듣는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 K-Pop과 그 관련된 산업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버거웠습니다. 어떡해서든 관계 트고 뭔가 함께 해보고 싶었는데 말이죠. 

그랬던 그가 5월 말쯤에 장문의 이메일을 써줬어요. BTS의 인기와 K-Pop의 무한한 성장성에 대해서 확신한다. 한국에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 때 한 번 같이 해보자라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바쁜 양반이 courtesy 이상의 긴 문장을 담아 굳이 먼저 이메일을 보낸데는 이유가 있겠지요.

이렇게 짧지만 강렬한 기억때문에 Artist IP, Original IP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겠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을 했었고, 이제는 몇 가지 결과물이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이오콘텐츠그룹이었습니다.

제일기획의 인연으로 소개받은 CJ의 중국 영화투자를 담당하던 오은영 대표가 설립한 시나리오 단계의 IP를 개발하는 콘텐츠 제작사입니다. 

비전문가이지만 인기있는 콘텐츠의 제작에 있어 쪽대본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고, 김은숙 작가 등 유명 작가가 차지하는 중요성, 그리고, 시놉시스-시나리오 단계에서 작품에 대한 투자가 결정될 수 있다는 주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플랫폼 투자로부터 유추해 보건데, 종편 등 채널의 증가와 특히 OTT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Supply) 측면에서 부족현상이 생기고 그에 따라 제작사들이 잇따라 상장하는 사례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Supply Chain 상 제일 첫 단계인 기획-시놉-시나리오 단계를 틀어쥐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것을 시나리오 작가들의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풀어낸 사업 모델은 꽤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창업하자마자 아주 소액이지만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투자 당시 목적에 맞는 재원이 충분하지 않았고, 귀동냥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해당 영역의 지식과 네트워크로는 투자자로서 투자금 이외에 회사에 추가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표 또한 대기업에서 일하다 처음으로 독립하면서 모든 사업 영역을 책임지고 해나가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무엇보다 자금의 확보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창업 초기에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모든 사업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이제는 유명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 뿐만 아니라, 회사가 처음 목표로 했던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서부터 제작/투자에 이르는 사이클을 갖추는 단계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IT 서비스 투자와 바이오 투자의 전문성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콘텐츠 투자는 그만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타고자 하는 욕심으로 시작된 투자였습니다만, 이제는 직접 콘텐츠 제작에까지 관여를 하고 있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며, 거대한 트렌드인 것은 맞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오에서 만든 콘텐츠를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케이블 채널에서 보며 하하호호 할 수 있는 시간이 빨리 오면 좋겠고,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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