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C 2026, 반도체의 구조적 진화와 알세미
GTC가 다가오면 항상 설레는 마음이 든다. 어릴 적 게임 그래픽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때도, 채굴기를 만들려고 낑낑대던 때도 그랬던 것 같다. 엔비디아가 또 어떤 걸 들고 나올지, 젠슨황 CEO의 가죽 재킷이 이번엔 바뀔지도. 이번 GTC에서는 차세대 GPU 로드맵의 윤곽이 공개될 것이고, 관련 업계 전체가 숨을 죽이고 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발표 내용보다 그 이면에 있는 기술적 맥락에 더 관심이 간다. 시장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진짜 투자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GB200은 왜 생각보다 어려웠나
솔직히 GB200이 시장에 안착하는 데는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공급망 문제, 소프트웨어 최적화 문제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발열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채굴장 안에 들어가면 공기 온도가 60도에 육박한다. 들어가 본 사람은 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리콘 기계의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도 팍팍 든다.
발열은 데이터센터에서 단순히 불편한 문제가 아니다. Uptime에 직결되는 문제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365일 돌아가야 하는데, 칩이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클럭을 낮추거나 셧다운이 발생한다. 90도 정도 되면 채널이 saturation되기 시작한다고 30년 전에 Sedra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가 사라졌다. 순간 SLA(Service Level Agreement)가 깨지고, 고객은 클라우드 사업자한테 전화를 한다. 이걸 무서워하지 않는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신기술을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업계가 유리기판 같은 새로운 소재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도 이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최근 JEDEC이 차세대 HBM의 두께 기준을 완화한 것도 심상치 않다. HBM이 두꺼워지면 방열 설계의 자유도가 생긴다. 결국 발열로 인한 에러를 잡으려는 시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Later comer인 삼성전자에게도 여유가 생긴 것 같다.
GPU 내부의 구조적 진화 — SRAM이 커진다
더 근본적인 방향의 변화도 보인다. GPU 내부의 SRAM 용량을 키워서 외부 메모리와의 데이터 트랜스퍼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다. 차세대 HBM의 속도 기준도 다소 느슨하게 가져간다고 하는데 이것도 발열을 고려한 것 같다. 데이터가 칩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잡아먹기 때문에, 필요한 데이터를 칩 안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그만큼 전력 효율이 올라간다. AI 연산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 방향의 설계 진화는 필연적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생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SRAM을 고밀도로 집적하는 기술은 파운드리의 핵심 역량 중 하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이 영역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TSMC가 지금 최선단 공정의 캐파를 애플, 엔비디아, AMD 등 대형 고객에게 나눠주느라 정신없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물량이 TSMC 한 곳에 집중되는 건 불편한 일이다. 공급망 다변화는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필수다. 삼성 파운드리에 내 친구들도 많으니 좋은 일이다. 윤상무님도 파이팅!
삼성전자가 SRAM 집적 경쟁력을 앞세워 엔비디아 GPU 파운드리 일부 물량을 가져오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그것은 주가에도 유의미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되는 건가? 라고 물으신다면... 글쎄. 파운드리 수율이 먼저 따라와야 하고, 수주 확정이 발표되는 시점이 진짜 모멘텀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 논리를 인지하고 지켜보는 단계라 생각한다.
그리고, Alsemy 이야기
이번 GTC에 함께 가고 싶었던 분이 있다. 우리가 투자한 Alsemy의 조현보 대표님이다. 3월은 주총과 펀드 보고의 시즌이라 연중 가장 바쁜 때 중 하나라서 목구멍이 포도청인 지경이라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사실 현장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장에서 무슨 소식이 들려오느냐다.
새로운 반도체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바뀌고, 그에 따라 공정의 수많은 파라미터들이 바뀐다. 이 때, 설계 자동화 툴이 빛을 발한다. 요즘처럼 GPU 내외부 구조가 빠르게 진화하는 시기에, 새로운 설계를 빠르게 공정에 반영할 수 있는 자동화 기술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것이다. Alsemy가 AI 기술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Alsemy가 반도체 공정 설계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회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싶었는데…
벤처 투자를 생업으로 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한다. 이 일을 해오면서 뿌듯한 순간은 물론 수익 실현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순간은 내가 투자한 회사가 세상이 바뀌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그게 진짜다. Alsemy로부터 그런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 많이, 많이.